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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첨지놀이의 유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4구) 고양동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속 인형극이 있다.
속설에는 고려때부터 전하는 것이라 하지만 확증할만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옛날부터 전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싶다. 오늘날 '서산 박첨지놀이'의 예능보유자로써 '서산 박첨지놀이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김동익 회장은 이러한 민간 인형극이 조선시대까지는 전국적으로 전승되었던 것이나 지금은 오로지 탑곡리에만 남아있음을 자랑한다.

그렇게 된 연유로는 탑곡리 마을 사람들이 남달리 인형극 놀기를 좋아하여 소규모나마 추석 명절과 농한기에는 끊임없이 놀아왔으며 1930년대 초 유영춘이라는 남사당패 출신의 놀이꾼이 탑곡리 마을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당시 놀이를 주재하고 있던 주연산(1903~1993)과 함께 오늘의 놀이형태로 짜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가 강점했던 시기에는 일시 중단되기도 했었지만 1945년 해방이후 다시 재개되었고 주연산이 주도하는 가운데 어렵사리 되살아나게 되었다고 한다.

김동익회장은 54년부터 주연산에게 박첨지놀이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는데 마을사람들도 자연스레 함께하면서 마을놀이의 성격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박첨지놀이는 주로 농한기나 특히 추석명절에 크게 놀았는데 놀이판이 선다는 소문이 퍼지면 원근동의 구경꾼들이 모두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한 동안 놀이판을 벌이는 횟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대신 전통예술을 전공하는 학자와 젊은 학생들이 희귀한 '민속 인형극'이 전승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찾게 되었고 텔레비젼, 라디오에서도 관심을 갖고 취재ㆍ방송하게 되자 1990년대 초부터는 다시금 공연활동도 잦아지고 '서산농공업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배우게 되고 이를 청소년민속예술축제에 출연하는 등 새로운 계기를 맞아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승되고 있는 민속인형극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의 하나인 '꼭두각시놀음'과 특이한 형식의 인형극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그리고 아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유일한 그림자 인형극인 '만석중놀이'와 '서산 박첨지놀이'를 꼽게 된다.

늦었지만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서산박첨지놀이'가 지정되어 한 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살아있는 유일한 민속 인형극으로 각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고양동에 소재한 '서산 박첨지놀이보존회' 앞마당에 세운 '서산 박첨지놀이 전승마을'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박첨지놀이의 구성  
   
줄거리는 3마당 4거리로 짜여져 있다.

<첫째 ㆍ 박첨지 마당>은 허름한 초로의 노인인 박첨지가 큰 마누라를 집에 두고 팔도강산을 유람하다가 젊은 작은 마누라를 얻게 되고, 유람 끝에 집으로 돌아오자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 사이에서 곤욕을 치루던 끝에 두 사람에게 살림을 나눠 주는데 작은 마누라만 후하게 줌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다. 봉건적 가부장제도 하에서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둘째 ㆍ 평안감사 마당>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던 평안감사가 민생에는 아랑곳없이 매사냥에만 정신을 쓰며 백성들을 못살게 군다. 끝내는 꿩고기를 잘못 먹어 죽게되어 상여가 나가는데 그의 아들들 마저 체통을 지키지 못한다.
<셋째 ㆍ 절 짓는 마당>은 큰 가슴으로 세상을 얼싸안는 민중의식이 잘 함축되어 표현되고 있다. 시주를 걷어 '공중사'라는 절을 짓고는 눈먼 소경을 비롯하여 불우한 백성들은 물론이요, 삼라만상 묻 중생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31937) 충남 서산시 음암면 탑곡고양동1길 113-9 서산 박첨지놀이 전수관 TEL.041-662-7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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